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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Thinking/기타

자본개념의 변화 - 부르디외

과연 자본이라는 것이 돈이나 공장 등 생산수단의 개념에만 한정되는 것일까. 오늘날의 자본 개념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문화의 중요성이 증대하고 지식, 과학, 문화 등이 가치의 새로운 원천으로 부상하면서 고전적 자본의 개념으로는 더 이상 현실을 해석하는데 한계를 갖게 되었다.

자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현대사회학의 거장 피에르 부르디외로부터 시작됐다. 부르디외는 마르크스의 경제적 결정론을 비판하면서 정치적 권력(Power), 경제적 자산(Property), 문화적 위광(Prestige) 등 세 가지 차원을 강조하는 중층적 관점을 제시한 베버의 시각을 받아들였고, 이 세 가지 차원 중에서도 특히 문화라는 관점을 강조했다.

세계문화를 이끌어온 프랑스적 지적 전통에서 문화의 관점이 부각되면서 사회를 문화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새로운 지성사적 조류가 탄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르디외는 자본을 경제적 관점에 국한시키는 것을 거부하면서 네 가지 관점의 자본개념을 정립했다. 부르디외는 경제자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본의 다양한 형태를 현대적 관점에서 구분함으로써 경제결정론적 계급개념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부르디외가 구분한 자본의 범주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이다.

부르디외의 네 가지 자본 개념

첫 번째는 경제자본(economic capital)이다. 이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기위해 사용될 수 있는 돈과 물질적 대상을 말하는 것으로 고전적 의미의 자본개념에 해당한다. 부동산, 소득, 연봉, 생산수단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인데, 문화자본은 다시 세 가지로 세분된다. 지식, 교양, 기능, 취향, 감성 등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획득되는 특성과 습관으로 체화된 문화자본이라 할 수 있고, 문화상품, 수집품, 예술품, 컴퓨터, 휴대폰, 가전제품 등 가치 있는 문화적 대상물은 객체화된 문화자본이며, 졸업장, 학위, 자격증 등 공식적인 교육관련 자격과 훈련은 제도적 문화자본이다. 이 모두가 문화자본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사회연결망 내에서의 위치나 관계로 나타나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인데, 인맥이나 연줄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부르디외가 꼽고 있는 자본은 다른 세 가지 유형의 자본들이 정통적으로 승인된 형식, 즉 위신, 존망, 명예, 명성 등의 상징자본(Symbolic capital)이다.

이렇게 부르디외는 자본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자본의 외연을 확대했고 비경제적 자본, 특히 문화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관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문적 조류가 바로 문화사회학이다. 물질적 기반이 튼튼해지고 삶의 토대인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문화와 삶의 질이 자연스럽게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다. 문화자본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 개념이다. 실제로 문화자본의 힘과 가치는 현실적인 물질적 힘으로 나타난다.

누보 부르주아를 위한 체크리스트

부르디외는 부르주아의 개념도 새로운 자본의 개념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고,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 상징자본 등 네 가지 자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부루주아(누보 부르주아)를 정의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로 20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가령 ‘경제자본 관련된 체크리스트는 주식 등 유가증권이 있다’, ‘재산세를 납부한다’ 등의 항목이고, 문화자본 관련 문항은 ‘그랑제콜 출신이거나 박사학위가 있다’, ‘외국어를 2개 이상 구사한다’,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관람한다’, ‘연극, 오페라 등 공연을 월 1회 이상 관람한다’, ‘미술작품이나 골동품을 구입한다’ 등 5가지 항목이다. 사회자본 항목은 ‘월2회 이상 외식을 한다’, ‘20명 이상 파티나 뷔페만찬을 주최한 적이 있다’, ‘사회저명인사와 알고 지낸다’ 등이며, 상징자본 문항은 ‘좌파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한 적이 있다’, ‘신문방송에 인터뷰한 적이 있다’, ‘국제단체에 월 15만원 이상 기부한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