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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Management/Nintendo

Nintendo 의 혁신경영 케이스스터디(1)

이번주 기사를 보니 삼성전자의 이윤우 부회장과 이재용 전무가 닌텐도를 방문한 내용이 눈에 띄였다.
‘창조경영’ 삼성, 닌텐도 역발상 벤치마킹?
기사에 따르면 삼성이 닌텐도의 수뇌부를 만나고 앞으로 닌텐도식 창조경영을 받아들이지 않을까에 대한 추측도 있다. 또한, 이명박대통령도 작년에 왜 우리나라에는 닌텐도 같은 제품을 못만드냐고 해서 패러디한 명텐도 패러디 시리즈가 나왔을정도로 닌텐도는 우리에게는 불황의 시기에도 새로운 가치창출을 통해서 성공을 이루어낸 환상으로 존재로 추앙받고 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비지니스 위크지의 2006년도 혁신 순위는 50위권에는 들지도 못하다가 2007년 39위에서 2008년 7위로 비약적이 도약을 하게 된다. 가장 주요한 이유는 이익율이 높아도 너무 높았던 것이리라. 또한 50위권안에 선정된 기업들안에서도 인당 매출이 가장 높은 기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닌텐도가 도대체 어떤기업이길래 이 난리들일까? 닌텐도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도록하자.

첫번째 상승과 하강

그러니까 117년전 화투를 제조하기 시작한 집안의 "야마우치 히로시"는 닌텐도를 와세다 대학 법학 2년때 중퇴하면서 할아버지로 부터 회사를 물려받게 된다. 이때 조건으로 야마우치 히로시는 물려받는조건으로 닌텐도에 있던 모든 친인척을 내보낼것을 약속받는다. 맨처음에는 반발이 심했으나 차츰 야마우치 히로시의 카리스마와 플라스틱 카드등의 성공으로 닌텐도는 교토지역의 최대 카드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1956년에 일본의 기업인들이 미국을 방문하는데 그때 야마우치 히로시는 세계최고의 카드 제조업체인 US플레잉 카드사를 견학하게된다. 그러나 소규모에 매우 낮은 수준의 공장을 보며 매우 실망하게 되고 단순히 카드제조회사가아닌 새로운 사업분야로의 변신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을 모색하기위해서 라면과 같은 식품업에서 부터 모텔을 운영하는 숙박업, 택시 회사의 운수업까지 다양한 사업을 실행하지만 모든사업에서 실패하게 된다. 이때 닌텐도의 주가는 980엔에서 60엔으로 하락하게 된다.

두번째 상승과 하강
그러면서 생각한것이 카드회사이기 때문에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완구업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완구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러면서 닌텐도 기업역사의 중요한 인물중의 하나인 기술과 아이디어의 명인이라 불리우는 "요코이 군페이"를 라는 인재를 발굴하게 된다. 요코이군페이는 울트라 핸드라는 아이디어 상품을 고안해 내게 되고 야마우치 히로시의 선택에 의해서 양산되어 120만개나 팔려나가는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후로 울트라머신, 광선총, 사랑테스트기등이 연속적으로 히트를 하게된다. 그러나, 중동 오일 쇼크가 오면서 내수시장이 위축되었고 이것을 해외시장 개척으로 돌파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사위인 아라카와를 미국에 급파하게 되는데 아라카와는 오락실용 게임인 레이더 스코프라면 미국시장에서 성공할수 있을것라고 생각하게 된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사위의 판단을 믿고 4개월동안 공장을 풀가동하여 3천대에 이르는 게임기계를 완성하여 미국에 진출시킨다. 그러나 1천개만 팔리고 2천개는 팔리지 않고 창고에 고스란히 재고로 남게된다.

세번째 상승과 하강
이때 요코이군페이가 재고로 남의 게임기계속의 기판중에 롬만 갈아끼면 새로운 게임 구동이 가능한것에 착안하여 비디오게임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그러면서 1977년 닌텐도는 처음으로 비디오 게임을 출시하게 된다.

맨처음에 출시된 게임에는 액정이 없었으나 1980년에 '게임&워치'에 당시로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액정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닌텐도가 독창성과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고 남의것을 베낀것이 기업을 어려움에 처하게 했던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게 된다. 이러한 공모전등을 통해서 아이디어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게임 기획을 전담으로 맡길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공모전에서 닌텐도에서 중요한 두번째 인물을 발굴해 내는데 바로 게임의 신이라 불리우는 "미야모토 시게루"이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게임인 '동키콩'을 1981년에 발매하게 만든다.

이때 동키콩에 처음 등장했던 점프맨은 후에 슈퍼마리오의 원조가 되었을정도로 동키콩은 닌텐도의 획기적이 전환점을 마련한다. 그리고 얼마나 인기가 좋았던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스트리트 파이터2 가 5만장 판매되었던 반면에 동키콩의 최종판매량은 6만 5천장으로 대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을 경험하면서 야마우치 히로시는 요코이 군페이에게 다른회사가 최소 1년동안은 따라올 수 없는 정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가정용 게임기를 만들라고 주문한다. 또한 미야모코 시게루에게는 가정용 게임기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부서인 정보개발본부의 과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본격적으로 가정용 게임을 개발하도록 주문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 두가지를 모아 회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1983년 발매된 닌텐도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컴'을 개발하게된다. 패미컴 개발당시 하드웨어 가격을 낮추기위해서 리코전자에서 150만개의 CPU를 일시에 주문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리하여, 가격은 성능에 비해 획기적으로 싼 금액인 14900엔을 책정해 시판한다. 이러한 저가 하드웨어 전략은 소프트웨어로 인한 지속적인 이익창출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실행되었다. 패미컴은 1개의 하드웨어에 1개의 소프트웨어만 사용 가능한 기존의 상품과는 달리 카세트를 교체함으로써 또 다른 게임을 즐길수 있음으로 인해서 단기간에 수명이 끝나느 완구에서 하나의 플랫폼으로 지속적인 비지니스를 할수 있도록 비지니스의 형태를 바꾸게 된다.

패미컴 판매에 동시 발매 타이틀로는 뽀빠이와 동키콩이 있었는데 이것은 기존의 오락실용 게임을 이식한것이였다. 그러면서 1985년 닌텐도의 대표 게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출시되면서 닌텐도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게 된다. 6개월 만에 50만대를 판매하였고 3년만에 300만대를 판매하였다. 슈퍼 패미컴은 전세계적으로  4900만대를 판매하게 되면서 일본 제일의 게임회사이자 장난감 업체로 등극하게 된다. 이때 사원 1인당 매출은 2억엔이였다.

이후 닌텐도는 소니와 합작형태로 가정용 게임기를 개발하기로하였느나 이약속을 일방적으로 야마우치 히로시가 깨게되고 결국 소니는 독자적인 힘으로 게임기 시장에 진출을 결심하게 된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등장시키며 게임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다. 게임을 발매하기 위해서 소프트웨어 회사가 닌텐도에게 게임 카피당 10달러를 내야하는 관례를 깨로 각 개발사들이 유통을 스스로 해결할수 있는 자율권을 준다. 또한 게임판매를 레코드점이나 편의점에서 할수있도록 유통채널을 다각화 하면서 소니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소니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1인자로 등극하였도 2등 자리를 놓고 세가와 닌텐도가 경쟁을 하다가 마이크로소프트가 XBOX를 출시하면서 닌텐도의 게임큐브와 2위자리를 경쟁하게 된다. 그러나 휴대용게임기 시장에서는 닌텐도가 1인자로서 포케몬이 6천만장의 히트를 기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닌텐도는 게임기 시장 진출이후 최초로 분기 적자를 경험하게 된다.

네번째 상승
2002년 74세가 된 야마우치 히로시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의해 스스로 퇴진을 결정하게 된다. 퇴진하면서 6인의 집단 지도체제를 구성하게 되는데 과저의 원맨체제와는 상반된 대표권을 행사하여 상하관례에 의해 업무를 지시하고 받는것이 아닌 회사의 여러사안에 대해 상호 존중하면서 가능하면 의견을 통합하여 결정하도록 결성된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이때 "이와타 사토루"를 대표로 결정하게 된다. 이와타사토루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사람들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스타일로 직접 개발자들을 인터뷰할정도의 친화력을 과시하면서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닌텐도를 이끌어오고 있다. 이 시기에 게임시장은 정체기를 맞으며서 '게임 이탈현상'이 표면화되는데 게임이 어렵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면서 일반인이나 어린이가 이탈하면서 일본 게임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2003년에  닌텐도의 기본전략을 '게임인구의 확대'로 결정하여 성별, 게임경험의 유무를 불문하고 누구나 즐길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하게 된다.  이를 위해 누구나 같은 출발선 상에서 게임을 즐수있도록 하기위해서는 인터페이스의 쇄신이 필요했고 그래픽이 아닌 아이디어와 재미를 구현할수 있는 게임기 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마침내 2004년 말 닌텐도 DS가 출시되는데 2개의 화면에 터치 스크린과 마이크 입력을 조합한 기존 게임기에 없었던 독특한 구성의 게임기를 출시하게 된다. 일본 DS시장의 밀리언셀러 타이틀은 이미 16개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2006년 말에는 닌텐도 Wii를 출시하는데 리모콘으로 조작하고 간단한 스포츠게임 등을 누구나 즐길 수 있게 하면서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 게임기는 게임역사상 가장 빠르게 팔리는 가정용 게임기가 되었으며 지금도 미국시장에서는 상당기간을 기다려야 게임을 살수 있을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다.

닌텐도는 2008년 매출이 16조로 작년보다 무려 73%증가하였고 영업이익도 115.6%증가한 4조 6,600억원을 기록였으며 1742억9000만엔의 순익을 기록하였다.


닌텐도의 역사는 그야말로 굴곡많은 성장과 실패의 반복이였다. 그때마다 주요한 인물이 회사를 다시 성공적인 궤도에 올려놓았음을 역사를 통해서 볼수 있다. 닌텐도의 긴 역사와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면 현재의 성공을 없었을것이다. 이 닌텐도의 역사없이는 닌텐도가 가진 혁신을 분석할 수 없기에 역사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였고 다음 칼럼에서는 닌텐도의 조직문화 혁신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자신이 가진것,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스스로 발견한 것보다 위대한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을 하는것,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는 방법입니다. - 야마우치 히로시

New Media Planner/Creative Consultant
I&Company 수석컨설턴트
경희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sunlee@iandcompany.co.kr